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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생각

인터넷 명예훼손, 분쟁조정과 임시조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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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원래 군사용으로 개발됐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만약 민간에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았다면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러한 글도 여러분이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의 민간에의 보급은 표현의 자유의 범위와 수단을 현격하게 증대시키고 다양화 시킨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항상 문명의 이기를 좋은 쪽으로만 이용하지는 않았듯이 인터넷도 나쁜 쪽으로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이버 범죄가 등장한 거죠. 해킹, 불법사이트운영, 사기와 같은 전문적인 범죄를 비롯해 명예훼손, 사생활침해, 사이버스토킹, 사이버성폭력과 같은 사이버폭력을 포함한 사이버범죄는 연 10만 건 이상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럼 사이버범죄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중고나라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고나라의 연관검색어! 바로 사기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사이버 사기의 경우 2009년 이후 매년 꾸준히 3만 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는 건데, 범인을 잡고 보면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인테넛을 이용한 소액 사기 범죄에 대한 양형과 교정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통계>

 

 

해킹, 불법사이트운영, 사기와 같은 사이버범죄는 경찰에 신고를 함으로써 해결을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오늘 포스팅의 주제인 인터넷 명예훼손은 경찰에 신고를 하기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한 저 역시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이유로 경찰서를 찾은 적이 없을 만큼 인터넷상에서 발생하는 명예훼손 행위는 신고하기도 애매하고 용서하기도 애매한 그냥 기분 나쁘고 짜증나는 비일비재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연간 피해접수가 되는 사이버 폭력만 10,000건 이상이니 저처럼 그냥 넘어간 피해 건수까지 합산하면 10만 건 이상의 사이버 폭력이 발생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억측은 아닐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인터넷 명예훼손! 그냥 저처럼 넘어가는 게 상책일까요? 국회는 2008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인터넷 명예훼손 분쟁조정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인터넷 명예훼손 분쟁조정 제도를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등의 권리침해 행위에 대해 자율적인 규제에 맡긴다는 전제하에 당사자의 자발적인 분쟁조정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명예훼손 분쟁조정부를 통해 분쟁의 조정이 이뤄지고 있고요, 형사 고소가 부담스러운 명예훼손 피해자에게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줬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제도이긴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제도를 활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 자료를 보면 분쟁조정부는 명예훼손 정보 2,235건을 심의하여 280건의 정보에 대하여 시정요구를 결정하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2,235건! 너무 적지 않나요?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사이버 폭력에 대응하고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한 번 정도는 해봤을 포털에 신고하기! 네, 저와 같은 소시민은 포털사이트에 신고해서 블라인드와 같은 임시조치를 요청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임시조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2(정보의 삭제요청 등)'에 의거 한 조치인데요.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권리침해로 인한 분쟁은 인터넷포털 사업자가 실시하는 임시조치에 의하여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던 저도 종종 임시조치를 당하고 있다는 건데요. 다음과 네이버에 접수되는 임시조치 요청 건수를 보면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 동안 무려 3,600건의 임시조치가 이뤄졌습니다("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권리침해의 충돌,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국회 토론회 자료, 최문순 의원실).

 

그럼 저는 왜 임시조치(블라인드 규제)를 당했을까요? 최근에 당한 임시조치는 용인 살인사건의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임시조치를 함에 있어서 흉악범의 얼굴을 보호해줘야 하는지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 임시조치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취할 수 있는 게 임시조치입니다.

 

 

용인 살인사건 포스팅이 임시조치를 당하기 며칠 전에는 <2년> 전에 올린 퓨전 한정식집 후기가 업주의 요청으로 블라인드 규제를 받았습니다. 음식점 주인이 보기에 포스팅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죠.

 

 

 

그린 샐러드와 바나나 스프링 롤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딱 저 상태로 나왔어요.

1인 3만원 이상하는 퓨전 한식을 내놓는 음식점에서 저런식의 세팅을 해주는 건 처음 봤어요^^

  물은 따르기 싫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수저 세팅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전체적으로 좋지 않았다는 리양스의 글이긴 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평가와 표현에 대해 업주는 명예훼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임시조치를 요청했고, 포털은 규정에 따라 임시조치를 하였습니다. 이런 업자들이 넘쳐난다면 인터넷에는 "맛있다"라는 평가만 넘쳐나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에 "맛있다"라는 평가만 넘쳐난다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됨은 물론이고 인터넷의 특질 중에 하나인 정보성을 상실하게 되는 거겠죠. 

  

 

연예인 병역비리가 터졌던 2010년에는 연예인들을 꼼수를 질타하는 내용의 <4급 보충역 되는 노하우>라는 글을 썼더니 병무청에서 제목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글을 삭제시켰던 일도 있습니다. 인권위에 "병무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병무청을 고발을 했더니, 병무청 관계자는 "내용은 건전하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삭제요청을 했다"고 하더군요. 고위층의 논문 및 학력위조 파문과 관련한 글을 쓰면서 과거 학력위조로 파문을 일으켰던 연예인의 이름을 언급했더니 <자신의 이름을 거론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삭제요청을 한 여배우 장XX씨도 인상적이었고, 유명 헤어디자이너 박X씨의 성범죄 사건과 관련해 <위계에 의한 강간죄와 양형>이란 내용의 글을 쓰며 사건 주체인 피의자의 사진을 함께 올렸더니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삭제요청을 해 황당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접수만 하면 처리를 해주는 신고의 형식을 갖고 있는 임시조치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초헌법적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터넷 상에서 사이버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분별한 임시조치는 결코 사이버 폭력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임시조치는 또 다른 이름의 사이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인 거 같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임시조치’에 관한 부분의 위헌성에 관하여 합헌이라 판단하긴 했지만 관련 쟁점의 판단에 관해서 ‘타인의 사생활, 명예 등 권리’를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는 법률조항의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부를 검토함에 있어서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제한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제한의 취지를 충분히 감안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것은 헌법재판소도 <무분별한 임시조치는 또 다른 이름의 사이버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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