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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생각

정남규 죽어서까지 얼굴공개 없는 흉악범의 천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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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부를 공포에 떨게했던 정남규가 구치소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정남규는 살인에 대해 단 한번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피해자들의 유족에게 사과한 적이 없는 파렴치범입니다. 더욱이 범죄피해자 유족들은 피해보상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범죄피해자센터를 통해 정신과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매달 50만원을 지원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정남규는 항소심에서도 "더 많이 죽이지 못해 안타깝다. 빨리 사형집행을 해 달라!"는 막말을 한 인간으로도 유명합니다. 

정남규 범행일지

신림4동 재래시장에서 18세 박모양 흉기로 찔러 중상해
고척동 20세 김모양 집에 침입 흉기로 살해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인근에서 23세 김모양 흉기로 살해
봉천 8동 24세 김모양 집에 침입 3자매 중 2명 살해, 1명 중상해
시흥3동 47세 황모씨의 집에 침입 둔기로 황씨와 13세 아들 중상해
봉천11동 장애인시설 내에서 둔기로 40세 홍모씨 등 2명 중상해
봉천 10동 26세 변모양 집에 침입 둔기로 살해
신길6동 24세 김모양 집에 침입 둔기로 김모양 경상, 격투 끝에 체포

정남규는 완전범죄를 위해 인천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후 2호선 라인을 중신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모자, 마스크, 안경을 이용해 변장을 하는 등의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성폭행을 할 때에는 콘돔을 이용했습니다. 

연쇄살인의 경우 보통 자신의 거주지 반경 10km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정남규는 지하철을 이용해 범행장소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다. 

정남규가 검거된 것은 어찌보면 상당한 운이 작용했습니다. 경찰은 정난규가 검거되기 직전까지 정남규를 용의선상에 올려두지도 않았었죠. 이 때문에  정남규는 경찰의 추적을 전혀 받지 않았고, 갈수록 대담해졌습니다.

2005년 4월 22일 새벽 4시40분쯤 서울 신길동 24세 김모양의 지하방에 침입했으나 1만원짜리 문화상품권 1장밖에 나오지 않자 홧김에 잠자던 김모양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쳤고 김모양 비명을 질렀습니다. 다행히 옆방에서 자던 아버지와 친구가 달려와 격투끝에 정남규를 붙잡았죠.
하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2명 중 1명이 순찰차 문을 여는 사이 엎드려있던 정남규는 수갑을 찬 채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경찰은 뒤늦게 150여명을 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정남규를 찾지 못했고, 범죄 현장에서 10m가량 떨어진 주택 옥상에 숨어있던 정남규는 주민의 신고에 의해 2시간15분 만에 다시 붙잡혔습니다.

만약 정남규가 김모양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쳤을 때, 김모양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면 정남규는 더 많은 사람을 살해했을 것입니다. 항소심에서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억울하다고 한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시나요?

이렇듯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보인 정남규는 4년간 편안하게 독방생활을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의 권리까지 누렸습니다. 과연 이것이 정당한 일일까요? 사형제도의 부활,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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