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워블로거 였다. 지금 받는 월급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내는 수익형 파워블로거였다. 어쩌다 겸직을 금지하는 기관에 취업을 하면서 블로그를 사실상 방치했다. 6개월 정도만 재미로 다닐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내 블로그들은 사망했다. 남은 블로그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게 전부다. 내 취미와 전문성도 8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대부분 사라졌다.
그런데 직장인, 특히 공무원이나 공직자 등에 속하는 사람은 블로그를 하면 안 될까? 당연히 해도 된다. 하지만 블로그를 하다 보면 지속적인 소득이 발생할 수 있어 공무원 또는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사람이 블로그를 하려면 기관장의 겸직 승인(허가)을 받아두는 게 안전하다. 나도 블로그를 예전처럼 열심히(?) 해보려고 겸직 신청을 했다.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퇴근 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서다. 성격탓인지 퇴근 후에도 내 직무와 관련한 뉴스를 보게 되고, 새로운 서비스나 기술을 내 직무에 연결 지어보려고 했는데, 그러한 것을 최소화해야 내가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와 나는 계약 관계이고 언제든지 그 관계를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회사에 잘한다고 회사가 나에게 잘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겠나?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선택한 첫 번째 일이 겸직 신청이다.
겸직 신청서는 각 기관마다 그 양식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 큰 틀은 유사하다. 대부분 겸직을 하려는 기관의 이름과 주소, 겸직 시 직위, 겸직활동의 내용, 겸직을 통해 얻게 되는 보수, 직무관련성을 작성하는 형식이다.
기관 이름을 쓰는 곳에는 블로그 플랫폼이 아닌 광고 플랫폼의 이름을 작성하면 된다. 예를 들어 네이버 블로거라면 네이버 애드포스트, 쿠팡 파트너스 등을 기관명에 기입하면 되고, 나처럼 티스토리 블로거라면 구글 애드센스, 쿠팡 파트너스, 다음 애드핏 등을 기입하면 된다.
겸직 기관 주소와 겸직 시 직위를 쓰는 곳에는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표기하면 된다. 겸직활동의 내용은 업무시간 종료 후 관심분야 포스트 작성 등으로 간단한 내용을 적으면 되고, 보수는 CPC 방식으로 지급이라고 작성하면 된다. 직무관련성은 당연히 없음으로 표기해야 한다(공무원 또는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성 있는 글을 블로그에 올릴 가능성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물론 위와 같이 작성했을 때 기관의 성격에 따라 추가 자료나 설명을 요구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고 그냥 승인을 하는 곳도 있다. 이미 다른 직원이 이미 블로거로 겸직 신청을 했었다면, 인사부서에서 후자의 경우처럼 쿨하게 겸직 승인을 위한 기안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전자의 경우처럼 추가 자료를 요청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공직자 등 중에서 블로그 겸직을 거부한 사례는 아직 못 봤다. 거부당했다는 글을 올리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업무에 지장을 준다고 볼 이유가 없고, 광고 노출 허용 버튼을 누르는 게 업무에 지장을 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기관 입장에서는 공무원 또는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국민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는 과정에서 소액의 소득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소송을 감수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많은 공무원 또는 공직자 등이 겸직 신청을 꺼려하는 게 사실이다. 뭔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것 같고, 인사에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겸직 승인을 받지 않고 블로그를 해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N잡 시대에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게 결코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니기에 이왕 블로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겸직 승인을 받고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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