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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생각

김주열의 묘에서 열사 김주열의 묘로 바뀌는데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 김주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혁명의 시발점이 된 대한민국의 열사를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누가 기억하겠는가?

김주열은 4.19혁명을 이끈 이 나라의 열사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17세,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목숨을 걸고 반부정, 반정부 항쟁을 펼쳤고 3.15 부정선거의 주범 이승만을 물러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박종균 사형 구형 신문

▲ 김주열 열사의 사체를 유기한 박종균 사형 구형 기사


탑골공원 이승만 동산

▲ 탑골 공원의 이승만 동상은 시민들에 의해 쓰러졌다.



당시 김주열 열사의 사체를 유기한 박종균에게는 사형이 구형되었고, 이승만의 독재는 끝났다. 이를 두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부활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사정권은 구테타만 좋아했지 혁명은 싫어 했기에 김주열 열사의 묘는 얼마전까지 '김주열의 묘'라는 초라한 묘비가 지키고 있었을 뿐 그의 묘비에서 '열사'라는 칭호를 찾아 볼 수 없었다. 17세의 나이에 반부정, 반정부 운동을 실천하며 이 나라의 민주화에 앞장선 애국청년 김주열 열사의 묘비에 열사라는 칭호가 새겨지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50년이다.

그런데 어쩌면 김주열 열사는 자신의 묘비에 아직까지 열사라는 칭호를 새기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반부정, 반부패가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자손은 여전히 잘살고 있고 당시의 부정부패 집단이 여전히 상위 0.1%인 대한민국에서 김주열 열사는 열사라는 칭호를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주열 열사가 목숨을 던져 얻으려한 것은 이 나라의 민주화이며 반부패, 반부정일 것이다. 따라서 그를 열사라고 칭하고 싶다면 우리 사회의 부패와 부정부터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