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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생각

박태준 별세, 독재자 박정희의 마패를 가졌던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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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쿠데타 세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박태준이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와 박태준은 사제지간이다. 박정희는 남조선경비사관학교에서 박태준에게 탄도학을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당시 박정희는 수학에 소질이 있던 박태준을 좋아했고, 5.16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비서실장으로 박태준을 임명했다.

박태준에 대한 박정희의 신뢰와 사랑은 그가 구테타를 저지르기 전에 박태준을 불러 구테타에서 빠질 것을 명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이번 일에서 빠지고, 대신 일이 잘못 되면 내 가족을 부탁한다"라고 했을 만큼 박태준을 신뢰했다(박정희가 정말 나라를 위해 쿠테나를 일으킨 거라면 자기 식솔 따위는 걱정하지 않았을 거다. 계백처럼...).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후에도 박태준에 대한 박정희의 신뢰는 계속됐다.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종이마패를 써줬다고 한다. 절대권력을 가진 독재자 박정희의 마패를 가진 박태준의 앞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박정희가 종이로 마패를 만들어 줬다고 해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었다는 건, 그만큼 군부독재 시대가 암울했음을 말해준다. 사실 법치주의국가에서 마패를 만들어 줬다는 거 자체가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마패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혹자는 박정희의 통장 잔고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을 두고 그가 청렴한 대통령이었다고 하는데, 마패가 초법규적인 효력을 발생시키는 박정희의,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세상에 통장 잔고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사가들은 박태준을 어떻게 평가할까? 포항제철이라는 세계적인 제철회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높게 평가하겠지만, 독재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다는 점, 93년 YS정부 시절 뇌물수수혐의로 불구숙 기소된 점, 이후 망명성 외유로 한국을 떠났던 점, 억울한 망명생활 경험이 있는 DJ가 정권을 잡자 총리에 임명됐지만, 부동산투기 및 명의신탁 문제가 불거지면서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한 점 등을 들어 박태준의 부정적인 면도 함께 기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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