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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생각

버스추행남 얼굴 공개 불가피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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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피해자라면 경찰에 신고했을까?

 

버스에서 추행을 당한 여학생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가해자의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가해자의 얼굴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은 일종의 공표행위이고, 이러한 공표 행위는 기업에게 쓰이는 형벌의 형태이긴 하지만 일종의 과벌행위 중 하나다. 여학생을 성추행한 남성이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력구제는 안 된다. 물론 마음같아서는 인적사항까지 다 공개해서 파렴치한 추행범이 더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여학생의 공표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공공장소에서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범죄자에게 무슨 명예가 있겠냐만은 여학생의 행위는 명예훼손죄로 처벌이 가능한 사안이다. 또 공표거절권(초상권)을 침해한 부분은 추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야기시킨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접근했을 때, 분명히 가해자의 얼굴을 공개하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추행남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을 정리해보면 피해자는 가해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유는 우리나라 법원은 성추행을 살인죄만큼이나 큰 죄처럼 생각하는 것인지 성추행범을 처벌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점에 있다. 재판정에 선 피의자들은 고의가 없었다며 억울해 하고, 판사는 그들의 말을 믿고 선처하고 만다. 이처럼 성추행의 고의를 입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최근에는 일반 국민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논리를 내세워 성추행범들을 풀어 주고 있다. 지난 7월 3일 대구지법에서는 골프용품 매장 여성 직원의 가슴부위를 손가락으로 씨르거나 손으로 쓰다듬은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된 배모(37)씨에 대해 "공개된 장소에서 성적으로 민감한 곳이 아닌 신체부위를 매우 짧은 시간 접촉한 것은 강제 추행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대구지법 형사12부 부장 김경철). 이런 법원의 논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외국인이 "너희 나라는 성추행에 대한 법원의 입장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어~ 우리나라는 성적으로 민감한 곳을 만져야만 성추행이 성립하는 성감대 자극설이 판례의 입장이야! 멋지지?"라고 해야 하나?

 

▲지하철 수사대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되지 않는 한 오리발 대장 성추행범을 처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법원 근처에도 못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추행죄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찰은 가해자가 손으로 피해자의 다리를 만진 것도 아니고, 다리로 부비부비를 즐긴 것을 형법으로 다루려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가해자 역시 버스가 흔들리면서 다리가 닿았을 뿐이라며 항변할 것이기에 파렴치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사진 공개 밖에 없었을 거다.

 

다시 한 번 더 질문을 던져 본다. "만약 당신이 피해자라면 경찰에 신고했을까?"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답한다면 그냥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 건지 묻고 싶다.

 

아무튼 사법부가 이렇다보니 웬만한 추행은 즐겨야 하는 세상이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글을 보면 가해자에게 "뭐야"라고 말했음에도 '웃음'으로 화답하는 여유를 보였다는 것은 가해자가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고, 다리를 이용해 성추행할 경우 피해자가 신고를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가해자의 버스 이용 내역을 토대로 버스의 CCTV를 확인해 보면 가해자가 어린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 하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또 이번에 공개된 버스추행범의 사진을 보고, 과거의 피해자들이 신고를 한다면 의외로 가해자 처벌이 가능할 수도 있다. 특히 언론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고무줄 사법부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성추행의 성립요건을 완화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추행남의 사진 공개가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버스 추행남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화학적 거세약물인 졸라덱스(zoladex)를 처방 받아서 스스로 투여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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