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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생각

김태촌 사망, 평생 두목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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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깡패 김태촌, 마지막 가는 순간도 정치인 돕나?

 

폭력조직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5일 오전 0시42분께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 김태촌은 2011년 12월 갑상샘 치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에 찾은 후 2012년 3월 서울대병원에 입원했고 같은 해 4월 21일 갑자기 심장박동이 멈추는 등 몸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어 지금까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김태촌은 박정희 독재시절인 1975년 전남 광주 폭력조직인 서방파의 행동대장 자리에 오르며 `주먹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광주지역을 장악한 김태촌은 1977년 활동 영역을 서울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지역 조직들을 제압해 서방파의 세력을 키웠다. 이후 정치 깡패, 경제 깡패는 물론이고 연예계에까지 손을 뻗어 김태촌을 끼지 않고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한다. 그러나 뉴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황모씨를 흉기로 난자한 사건을 교사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 받게 되고, 출소 후 범서방파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재건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 받아 주먹계에서 사실상 은퇴하게 된다.

 

 


 

노인이 된 김태촌은 만기 출소 후 교회 집사로 활동하면서 국제청소년범죄예방교육원을 이끄는 등 개과천선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수감 당시 교도관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가 드러나 재수감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투자금을 회수해달라는 청부를 받고 기업인을 협박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특히 권상우를 협박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 국민적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김태촌이 세 차례의 수감 생활을 모두 마치고 출소했을 때에는 이미 그의 나이는  61세였다. 한국의 조폭들이 마피아처럼 의리나 계보가 있는 것도 아닐텐데 김태촌은 출소 후에도 두목으로 살았다. 김태촌은 어떻게 평생을 두목으로 살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에 김태촌이 평생 두목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덕을 본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이 그 만큼 많았기 때문인 거 같다. 실제로 뉴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상해교사사건(86년) 당시 검찰은 김태촌에게 1ㆍ2심 재판 모두 사형을 구형했다. 그 정도로 뉴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상해교사사건은 인간의 짓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잔혹했다. 그러나 법원은 사건의 주범인 김태촌에게 무기징역도 아닌 징역 10년을 선고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이 1ㆍ2심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했음에도 법원이 10년형을 선고했다는 건 김태촌의 네트워크가 엄청났다는 방증일 거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김태촌이 주먹계를 평정한 시기와 사망시기다. 조양은, 김태촌, 김용남 등 전국구 조직의 두목이 탄생한 시기는 삼청교육대가 출범한 1980년 초반이다. 당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공작 등 정치 깡패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결국 김태촌이라는 전설적인 깡패는 부패한 권력이 만든 게 아닐까? 생을 마감한 시기도 절묘하다. 국회의원 연금법이 통과해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이 순간 사망하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튼 어떤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찾을지 국민들의 관심이 김태촌의 장례식에 쏠리게 될 거 같다(사진 출처 : 김태촌 팬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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