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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생각

신종 보이스피싱 전화 받아보니, 정말 기발해서 속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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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신종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김모 수사관(실제로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의 이름)이라고 자신의 관등성명을 밝힌 남성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국민금융범죄수사팀에서 수사중인 사건에 제가 연루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김 수사관은 제 이름, 주소, 주민번호를 확인 하더니 본인이 맞냐고 묻더군요.
 


본인 확인 후 김모 수사관은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이철민이라는 자를 아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하자, 이철민 일당이 제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금융범죄에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제 명의의 대포 통장이 개설되던 날 해당 은행의 CCTV를 조회한 결과 통장 개설자가 모자를 푹 쓰고 있어서 본인 확인이 불가능해 범죄 혐의를 벗을 수 없는 상황이라 불가피하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제 주민등록증을 첨부하여 개설된 절차상 하자가 없는 통장이기 때문에 은행측에서는 피해 금액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기에, 이번 사건과 피해액 중 제 명의의 대포통장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은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혐의를 벗지 않으면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민사상 손해배상책임도 져야하니, 일단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홈페이지로 가서 피의자 신분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신분 변경 신청부터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 수사관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접속하여 개인정보침해센터를 클릭하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보이스 피싱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홈페이지를 통해 범죄 신고를 하라고 하니 순간 움찔 했습니다.


이어서 김수사관은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접속하면 <개인정보침해 상담, 신고 분쟁조정신청>버튼을 누르십시오"라고 하더군요.


김 수사관은 검찰 공무원스러운 어투로 신고 페이지 작성법을 알려줬습니다. 친절하게 제목과 내용까지 모두 불러주더군요. 정말 이 순간만큼은 김 수사관에게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법률 상식은 한 순간에 모두 지워지는 순간이었죠.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뭔가 찝찝한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김 수사관은 사건이 접수되었으니 전화로 구두신문을 시작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더군요, "지금부터의 전화 내용은 녹취가 되며 재판의 증거로 채택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김 수사관의 말이 끝나자 녹음이 되고 있음을 알리는 "삐"소리가 들려왔습니다(디테일한 구성에 박수!). 구두신문도 말이 안되지만 진술거부권에 대한 내용 조차 고지 하지 않더군요.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으면 증거능력이 없는데 말이죠. 하지만 워낙 피싱의 과정이 치밀해 형사소송법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김 수사관은 제 이름, 주소, 주민번호, 직업을 불러주더니 맞냐고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곤 황당한 신문이 시작되었죠.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이철민을 아는가?"
"모른다"
"본인 명의로 농협, 하나은행 계좌가 개설된 사실을 알고 있었나?"
"몰랐다"
"2011년 10월 6일 농협 모 지점에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한 적이 있는가?"
"없다"
"2011년 10월 7을 하나은행 모 지점에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한 적이 있는가?"
"없다"
"현재 본인 명의로 개설된 통장을 모두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
"본인 명의로 개설된 통장에 수상한 입금 내용은 없는가?"
"없다"
"본인 명의로 개설된 통장에 수상한 입금 내용이 없다고 했는데, 계좌 추적 결과 진술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경우 피의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구속 수사를 받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본인의 통장에 수상한 입금 내역이 없는지 확인하고 대답하라"
"없다"

신문이 끝난 후 김 수사관은 계좌추적을 위해 모든 인터넷 창을 닫은 후 www.bk-kor.com으로 접속하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거죠. 해당 주소에 접속하자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에서 운영한다는 <e-금융민원센터>의 내통장 거래내역 조회를 위한 인적사항 등록 페이지가 나왔습니다. 순간 웃음이 나오는데 참느라 고생했어요.


저렇게 중요한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페이지에 접속했는데, 보안프로그램이 하나도 깔리지 않는 것도 말이 안되는 상황이지만, 김 수사관의 지시에 따라 마지막 과정까지 온 사람이라면 이미 판단능력이 사라진 상태일 겁니다. 

김 수사관은 "검찰복무규정상 피의자의 금융정보를 요청할 수 없으니, 금융감독원에 직접 개인 정보를 입력해 금감원에서 계좌 추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기존의 보이스 피싱과의 차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영장도 없이 개인의 신용정보를 열람하겠다고 하니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는 일이지만, 젊은 사람들도 충분히 속을 수 있는 보이스 피싱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한해 보이스 피싱 피해액은 1019억원이었죠.

이제 수법을 모두 알았으니, 경찰에 신고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112를 누르기도 전에 김 수사관에게 전화가 다시 걸려왔습니다. 김 수사관은 "전화가 끊어 졌는데, 본 전화는 신문절차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자동연결이 되니까 전화가 혹시 끊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기다리세요"라더군요.

일단 전화를 끊기 위해 베터리가 없는 연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김 수사관은 "전화를 끊을 경우 재판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절대 전화를 끊지 말고 베터리 충전을 하세요"고 하더군요. "베터리 충전기가 다른 곳에 있어서 가지러 가야한다"고 했더니 김 수사관은 "녹취 중인데, 계속 전화가 끊기면 판사님이 전화 끊고 무슨 짓을 했냐고 물을 수 있다"며 충전기를 가지러 가는 동안 전화를 끊지 말것을 요구했습니다.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것과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전형적인 보이스 피싱의 수법 중 하나입니다.인거죠. 1)전화를 끊고 사법기관에 전화를 해 사실확인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2)전화를 걸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면 없는 전화번호라고 안내되기 때문이죠.
 
집요한 김 수사관 때문에 전화는 끊을 수 없는 상황이라 다른 사람의 전화기를 빌려서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스 피싱 맞구요. 그냥 끊으시면 됩니다"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결국 보이스 피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경찰은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경찰과의 통화를 마치고, 한 참 후 핸드폰을 켜봤더닌 놀랍게도 김 수사관은 22분이라는 시간 동안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리 있었습니다. 30분이 지나서야 전화는 끊어졌고, 전화가 끊어지자 마자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더군요. 경찰의 말대로 그냥 무시했지만, 전화는 계속해서 걸려왔습니다.


집요한 김 수사관은 쉬지 않고 20통의 전화를 걸어왔고, 저는 다시 경찰에 보이스 피싱 사건을 신고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무시했지만 전화가 계속해서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경찰관을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5분 뒤 경찰관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경찰관이 내 놓은 해결책은 "욕을 한 바가지 해주세요"였습니다. 디지털 금융범죄사건의 대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경찰의 해결책은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얼마전 보이스 피싱 범죄자에게 욕을 했다가 피자가 100판 배달되어 온 사건처럼 2차 피해를 당할 것 같아 욕은 못하겠다고 하니까 경찰도 특별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더군요.

▲ 영화 '그놈 목소리' 스틸컷


영화에서는 피해자가 납치범과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통화를 하는 사이에 경찰이 위치를 추적하던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으로 보이스 피싱범의 위치를 추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구요.

경찰이 돌아간 후에도 김 수사관의 전화는 계속되었고, 57번째 걸려온 전화를 받아 봤습니다. 김 수사관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정보 입력을 요구하더군요.  

저는 김 수사관에게 직접 출석해서 조사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김 수사관은 흥분하며 "검찰에 출석할 경우 피의자 신분으로 48시간 감금 상태로 수사를 받게 될 것이다"라며 말도 안되는 협박을 해 왔습니다. "그래도 출석해서 수사를 받겠다"고 했더니, 김 수사관은 "그럼 서울중앙지검으로 지금 출석해주세요"라며 끝까지 저를 낚아 보려고 하더군요. 금융사기는 실패하더라도,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게 만들어 골탕을 먹여보려는 김 수사관은 그야말로 뼈 속까지 사기꾼이었습니다.

결국! 보이스 피싱을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기를 당하지 않는 한 경찰도 도움을 주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시고 어떠한 이유에서건 금융정보 요구에 응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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