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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전도사 최윤희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이번 자살은 혼자가 아닌 동반 자살이라 충격이 더 크고, 주변인들을 더 슬프게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미화될 수 없고, 동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최윤희씨의 자살은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불가피한 자살처럼 보여 미화는 하고싶지 않지만 동정심은 든다.
고인이 유서에도 남겼듯이 최윤희씨는 700가지의 통증에 시달렸다. 문제는 통증의 갯수는 점점 늘어만 가고 결국엔 사망하게 된다는 불행한 결말이 '행복을 전도하던 최윤희씨 조차도 행복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거다. 어쩌면 불행 속에서 찾은 행복이 자살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처럼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불치병 환자들 중에서는 사는 것이 고통이고 형벌인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경우 안락사라는 것 자체가 촉탁살인죄로 처벌 받는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보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 외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게 현실이다. 혹시 생명의 소중함을 깰 수 없기에 안락사 보다는 자살을 권하는 건 아닐까.
인간답게 살 권리 Yes, But 인간답게 죽을 권리 No!
2009년 서울대가 허용한 연명치료 중단은 적극적인 안락사가 아닌 소극적인 방법, 즉 자가 호흡을 할 수 없는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존엄사다. 반면 극심한 통증 때문에 살아도 사는 게 아닌 환자에게 치사량의 진통제 등을 투약하는 행위는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품위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물론 존엄사는 악용될 소지도 있고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쉽게 허용되어선 안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또한 사람이 오랜기간 아프다보면 심리상태가 불안정해지고 우울해지기 마련이라서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존하게 하는 것 만이 꼭 치료라고 규정하는 것은 진정한 치료의 의미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최윤희씨처럼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못한 상황에서 죽음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환자에겐 고통스럽지 않고 좀 더 빨리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치료일 수 있다.
만약...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았기에 최윤희씨는 가장 사랑하는 남편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야 했고, 어두운 모텔방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만약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 아주 예외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했다면 최윤희씨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 했을 수 있었을 거다. 또한 건강한 그의 남편은 그녀가 떠난 뒤로도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며 명절을 맞이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극적 안락사는 범죄이기 때문에 안락사를 도와준 남편이 촉탁 살인죄로 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이 임종을 함께 한다면 방조범으로 처벌을 면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그래서 최윤희씨 부부는 자식들에게 여행을 간다고 집을 나서 비극적인 해피앤딩으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안락사라는 문제는 참으로 민감한 문제라 쉽게 접근할 수 없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면 인간인지라 한쪽으로 치우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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