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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생각

이끼의 진짜 사탄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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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원 살인 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

마을 식구들


웹툰 이끼와 달리 영화 이끼의 핵심은 기도원 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영지, 천용덕, 유해국 중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세 명이 모두 범행에 가담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선 영지는 살인을 교사한 교사범이고 천용덕은 교사 행위를 실행한 정범이죠. 마지막으로 유래국은 방조범 내지는 공동정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 영지가 왜 교사범인가?

영지


영화 초반에 기도원장이 천용덕에게 "사기꾼은 돈을 뺏고 사탄은 마음을 뺏는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냅니다. 기도원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유해국이 사람의 마음을 뺏는 사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진짜 사탄은 영지였습니다.

유해국은 교도소에서 천용덕의 사주를 받은 죄수가 자신의 허벅지를 연필로 찔러도 화를 내기는커녕 모든 이를 용서하는 신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유해국도 천용덕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했던 장면 기억나시나요?  온갖 복수 욕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인용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성경구절과 영지를 강간했던 범인들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알려주며 영지의 복수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유목형의 모습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꼈나요?

저는 그 순간, 진정한 사탄은 유목형 같은 사람의 마음까지 빼앗아 버리는 영지가 아닌가란 생각을 했습니다.

유해국의 부탁을 듣고 기도원으로 간 천용덕도 영지를 본 순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영지의 복수를 해주죠. 만약 천용덕이 유목형에게 마음을 빼앗겨 영지의 복수를 해 줬던 거라면 십수년간 유해국과 시골 마을에서 동고동락한  천용덕과 그 일당들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빼앗겼을 겁니다.  

결국 유해국이 자신만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을 뺏을 수 있었던 대상은 이미 종교에 심취해서 기도원을 찾은 사람들 정도에 불과했고,  그들 조차도 결국 유형목을 배신했다는 것은 유해국은 능력자가 아니라는 방증일 겆겁니다.

반면 유해국은 물론 천용덕 조차도 영지에게 마음을 빼앗겨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미 수십억의 부와 명예를 손에 넣은 천용덕이 유해국을 내치지 못했던 이유도 자신의 마음을 빼앗은 영지가 유해국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해국을 내치면 영지도 떠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고령의 천용덕이 재물과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유도 영지 때문입니다. 영지가 유해국은 생명의 은인으로, 천용덕 자신은 복수를 해준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천용덕을 계속 배고프게 만들었을 겁니다. 

하성규가 죽는 장면에서도 영지의 사탄적 기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해국을 죽이지 말라는 이장 천용덕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하성규는 유해국을 낫으로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영지가 '하지마세요'라고 말리자 너무 쉽게 영지의 말을 듣는 모습에서 영지의 말은 이장 천용덕의 명령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박민욱 검사에게도 나타납니다. 박민욱 검사가 마을에 처음 도착해서 영지와 눈이 마주치는 장면 기억나시나요? 이미 박민욱 검사는 그 순간 영지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며칠 후 건방지고 독선적인 박민욱은 자신을 만나러 온 영지의 말을 너무 쉽게 잘 따라주죠.

유해국도 마찬가지죠. 유해목은 아버지 유목형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시절 유해국이 아들 유해국과 통화하는 장면에서도 부자간의 정은 전혀 없었고, 어머니의 임종에 조차 찾아 오지 않은 아버지를 경멸했었죠. 그런 유해목이 영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오셔야 하지 않겠어요?"라는 말에 마을을 찾아오게 됩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면서도 "내가 왜 왔는지 모르겠다"며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는데, 그런 유해목도 영지의 부름을 받고 마을로 들어왔고, 성경책에 천용덕의 이름이 적힌 걸 보고 천용덕과의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합니다. 특히 천용덕을 파멸시키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이 그렇게 싫어 했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아닌가란 의심에서부터 시작되니, 모순이 아닐 수 없죠.

이런 점에서 저는 영지가 '진짜'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사탄이 아니었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웹툰과 달리 마지막 장면에 영지가 마을의 새로운 군주가 되어 미소를 짓는 모습이 없었다면 웹툰과 크게 차이가 없는 해석을 했겠지만 영지의 미소가 저의 의심을 더욱 가중시켰는데요. 이상의 해석은 기도원장이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는 말과 사탄인 줄 알았던 천용덕과 유해국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빼앗지 못했다는 점에 착안해 내 놓은 거니까 "헛소리 하지마"라는 악플은 삼가합니다. 

그리고 제 해석에 대해서는 "유목형이 죄수들의 마음은 빼앗지 않았느냐"라는 반론을 제기할 것 같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유목형이 죄수들의 마음을 빼앗은게 아니라 죄수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줬던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영화 친구를 보면 동수가 "고마해라.. 마이 무따이가"라고 말하자 동수를 찌르고 있던 놈이 겁에 질려 도망가잖아요? 이와 마찬가지로 유목형도 공포심을 심어 준 것이지 절대 그들의 마음을 빼앗은 건 아니라고 봐요.

아무튼 이상의 해석은 제 느낌에 불과하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끼의 영화 포스트를 보면, 가장 뒤에 영지가 있습니다.


영지가 마치 인형을 조종하는 마리오네터처럼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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