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로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들의 법률 고민을 상담해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09년에는 법률분야 파워지식iN에 선정되기도 했죠.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지식iN활동을 하고있지 않지만, 가끔씩 쪽지로 상담을 해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대부분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인데요. 오늘 도착한 쪽지의 내용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구요.
강간, 과연 피해자와의 사후합의 인정해야 하나?
쪽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19세 여성이 면식범에게 강간을 당해, 고소까지 했지만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합의 후 고소를 취하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강간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할 경우 소송조건이 결여되어 처벌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수사중에 합의를 하게되면 공소권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되고, 기소된 이후라도 1심판결선고전에 합의를 하게되면 법원은 공소기각의 판결을 하게 됩니다.
합의금은 피해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액수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가해자들과 합의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의 문제와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면 경찰은 피해자에게 구체적인 진술을 하도록 합니다. 조사과정에서는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는 대화가 오고가기도 합니다. 조사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거죠. 미국은 우리와 다른 시스템으로 수사가 이뤄집니다.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를 하면, 1)피해자를 병원으로 보내고, 2)가해자를 불러 구체적인 진술을 받아 냅니다. 가해자가 조사를 받는 동안 피해자에게는 산부인과 치료와 정신과 치료가 병행됩니다.
판례의 태도와 가해자들의 의식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원과 강간 가해자들의 변호인은 피해 여성도 강간을 유발하는 원인인자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만취상태의 여성이 적극(강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면 강간은커녕 준 강간도 아니라고 본 판결이 있죠(서울고법 4부 엄 모 판사). 가해자들 역시 성관계시 어느정도의 저항은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사법기관과 국민들은 상호 합의 하에 성교 직전까지 간 상태라고 하더라도 여성이 "No"라고 하는 순간 팬티를 올려 입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No"라고 했는데도, "앙탈은~"이라며 삽입을 강행하거나 성관계를 지속할 경우, 그 순간부터의 모든 행위는 강간이 되는거죠. 또한 미국은 강간사건 재판에서 피해자에게 강간의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왜 야한 옷을 입었느냐?, 만취상태에서 남자의 차는 왜 탔느냐"는 물을 필요도 없고, 물어서도 안되는 거죠. 가끔 CSI등에서 강간 피해 여성에게 의혹의 눈빛을 보내는 건, 다른 범죄 혐의가 있기 때문이지 순수한 강간 피해자에게 강간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즉 미국에서는 적극적인 동의가 있어야만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할까?"라고 물어봤을 때, "물론이지"라고 대답하지 않는 이상 섣불리 성관계를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고, 여성이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라고 해도 "꽃분이!!! 좋으면서 왜 그래"라며 삽입을 강행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인 거죠. 그러다보니 면식범에 의한 데이트 성폭력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데이트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남성을 고소하면, 주변에서는 "꽃뱀한테 걸렸네"라며 여성을 욕하는 사회적 편견은 성범죄자를 우대하는 사법시스템과 시너지 효과를 내어 피해자의 합의를 이끌어 내죠.
이처럼 피해자의 합의를 종용하는 대한민국은 강간공화국이 될 수 밖에 없는 사법시스템과 사회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상담 쪽지를 보내온 19세 피해 여성도 데이트 중에 강간을 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판에 대한 부담감과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결국 처벌을 포기하고 가해자와 합의를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미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하고 고소가 취하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강간을 이유로 어떠한 피해보상이나 사과를 받아낼 수는 없다는 말 외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더군요.
강간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고, 재판과정에서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시스템과 강간 피해자를 강간 발생의 원인인자로 보는 사회적 편견이 없었더라면 19세 강간 피해자는 과연 가해자와 합의를 했을까란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취재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세계 불꽃축제, "나만 즐기면 돼" (2) | 2011.10.10 |
---|---|
신지호 폭탄주논란, 100분토론서 취권 쓰려 했나? (5) | 2011.10.07 |
고졸출신 CEO 스티브잡스 사망, 전세계 애도물결 (1) | 2011.10.06 |
투개월 김예림, 화려한 변신 속에 숨겨진 뾰두지의 고통 (0) | 2011.10.01 |
성추행 고대 의대생 실형 및 신상공개? 1심 실형의 의미 (2) | 2011.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