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트에 갈 때 빈손으로 가거나 빈 장바구니를 가지고 가는데, 독일 사람들은 빈 플라스틱병, 일명 PET병(이하 페트병)이 잔뜩 들어있는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갑니다. 마트에가면 페트병 재활용 용기를 분류배출하는 장소가 있기 때문인데요. 재활용품 분류배출 1위국 국민들 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재활용품 분류배출 1위국 국민이 된 것은 국민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독일인들 뿐만 아니라, 터키인,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들도 독일에서 생활하면 그들처럼 분류배출을 하게 되거든요.
많은 국민들이 분류배출에 앞장서다보니 대부분의 독일 마트에는 위 사진처럼 페트병 자동 수거기가 있습니다. 페트병 자동 수거기 앞에는 항상 줄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자동수거기가 없는 마트에서는 아래 사진처럼 직원이 직접 페트병, 캔, 병을 분류해 수거합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마트에서 저렇게 넓은 공간을 재활용품 수거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대형 마트는 페트병뿐만 아니라 캔까지 분류 수거해주는 고급형의 빈용기 자동 수거기를 설치 운영중입니다. 그런데 고가의 빈용기 자동 수거기를 이용하는 시민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무용지물인 빈용기 자동 수거기를 독일사람들은 왜 줄을 서서 이용하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독일은 음료수 가격에 <용기 보증금(pfand)>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생수통 하나의 원래 가격이 1유로라면 판매가격은 용기 보증금 25센트(400원)이 포함된 1유로25센트인거죠. 생수 가격의 25%가 용기 보증금이니까 정말 돈 많고, 재활용 분류 배출이 하기 싫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빈병을 반환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페트병 20개만 반납해도 1만원 정도의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으니, 캔이나 빈병이 길 거리에 굴러다디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심심찮게 거리에 굴러다디는 빈용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400원을 줍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노숙인도 거리의 공병에 관심을 가기지 않습니다. 이유는 보증금이 없는(pfandfrei) 공병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보증금이 있는 빈용기에는 빠르게 반응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맥주병 등 일부 공병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보증금을 제품 가격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장바구니에 페트병과 캔을 잔뜩 담아가서 자동 수거기에 넣어도 돌아오는 경제적 이득이라고는 OK캐쉬백 5포인트가 전부라는 말입니다.
환경보호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생각해봐도 장바구니에 페트병을 가득 채우라는 건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마트에 페트병을 싸들고 가지 않아도 분류수거일에 맞춰 집 앞 분류배출함에 빈병을 배출하면 이산화탄소 저감 운동에는 동참할 수 있는데, 어느 누가 5포인트 적립하자고 고생을 사서 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우리나라 마트의 빈용기 자동 수거기 도입은 <외국 마트에는 왜 공병 자동 수거기가 설치되어 있는지 그 이유조차 파악하지 않고 "외국이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식의 발상에서 나온 졸속 시스템>에 불과한 거죠. 그 결과 환경을 위해 설치했다는 고가의 빈용기 자동 수거기는 오히려 환경을 해치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더군다나 독일의 용기 보증금 제도가 마냥 좋은 제도도 아닙니다. 용기 보증금이 소비자에게 부담되어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용기를 반환하지 않으면 그 이득은 마트가 보게 되는 시스템이라서 독일의 소비자 단체는 현재의 시스템에 불만이 많습니다. 또 환경단체는 환경 보호를 보증금 25센트에 벌벌 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전가하는 제도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무조건 외국에서 성공한 시스템이라고 해서 앞 뒤 가리지 않고 도입부터 하고 보는 잘못된 행태가 근절되지 않는 한, 자원 낭비, 환경 파괴는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따라해야 잘 따라하는 걸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의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보면 용기 보증금과 반환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환경오염의 주범인 페트병과 재활용 가치가 높은 알루미늄병은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실용정부(MB정부)는 녹색성장만 외치지 말고 녹색성장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빈용기 보증금제도를 시행중인 국가들 중에서 공병 일부에만 본 제도를 적용하는 곳은 녹색성장을 외치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특히 외국의 경우 환경 오염물질 배출이 덜한 유리병 용기보다 환경 오염 물질 배출이 심한 플라스틱 용기에 더 많은 보증금을 부과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빈용기 보증금제도가 얼마나 잘못된 제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쓰레기 종량제를 시행중입니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재활용품 분류배출이 잘 지켜지고 있는데요. 이런 국내 상황을 고려한다면 굳이 독일처럼 용기에 보증금을 부과하는 것은 2중으로 부담을 주는 정책이기에 바람직한 정책은 아닐 것습니다.
따라서 외국의 법과 우리의 상황을 잘 조화시킨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만들려면, 용량이 크면 클 수록 보증금이 많이 부과되는 엉터리 시행규칙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즉 용기에 보증금을 부과하고 싶다면 커다란 맥주병이 아닌 종량제봉투에 넣기 쉬운 작은 용기에 한해 제한적으로 보증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시행규칙 일부를 개정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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