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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생각

한일전 일본반응, 여전히 뻔뻔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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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일본반응을 보면 일본 우익들의 뇌구조를 알 수 있다. 침략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의 것을 원래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이번 한일전 패배 이후에도 "동메달을 빼앗겼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누구도 일본 올림픽축구 대표팀에게 동메달을 준 적이 없음에도 그들은 대한민국이 일본의 동메달을 빼앗아갔다며 분노하고 있다.

 

매경기 골을 기록하던 일본은 대한민국을 만나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대한민국은 일본이 그동안 만났던 팀과는 차원이 다른 팀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내용을 봐도 일본의 완벽한 패배였다. 일본 대표팀은 점유율만 가져갔을 뿐이지 미드필드 싸움에서 번번히 패하며 효과적인 공격을 못했다. 내용을 봐도 그렇고 결과를 봐도 그렇고 일본은 홍명보 감독의 전략에 완전히 놀아난 셈이다.

 

대부분의 일본 언론과 네티즌들은 일본의 완패를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감독의 지략 싸움에서도 졌지만 양팀 선수들의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경기였다"고 평하는가 하면, "영국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하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일본의 승리가 어려울 거란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메달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는 냉정한 평가를 한 네티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우익세력중에서도 꼴통들이다.

 

"한국에 패한 건 수치다", "패배자들을 모두 자위대를 보내야 한다", "우리도 병역을 걸고 싸우게 해야 한다. 한국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병역문제가 걸렸기 때문이다"는 등의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자신들의 실력 부족을 감추려하고 있다.

 

 

가장 불쾌한 반응은 "다케시마(일본인의 마음속에만 있는 섬)도 빼앗기고 메달도 놓쳤다. 일본은 뭐했나"라는 댓글이었다. 독도는 울릉도와 더불어 512년에 한국 영토가 된 후 계속해서 우리 영토로 실표적 지배되어 왔다. 일본은 한낱 미물에 불과한 지방자치단체가 1905년 독도를 자신들의 지자체 영토라고 고시한 것을 것을 가지고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보다 5년 앞선 1900년 일국의 왕 고종은 <칙령 제41호>을 통해 독도가 한국 한국 정부의 관할하에 있음을 천명했다.

 

심지어 1667년 쓰여진 은주시청합기라는 일본 문헌조차 독도는 고려의 영토라고 기술하고 있다. 1936년 일본 육군참모본부에서 발간한 '지도구역일람도'에도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나와 있다.

 

무엇보다 2차대전 직후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1946년 1월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군령을 발표하였으며, 연합국의 '구일본영토처리에관한합의서'에는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군령과 합의서의 배경에는 카이로 선언이 있다. 1943년 카이로에서는 "한국국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해 적절한 시기와 절차를 거쳐 한국을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로 만들 것을 결의한다. 일본이 탈취했거나 점령한 모든 태평양 섬들은 일본으로부터 박탈한다"라고 밝힌 카이로 선언이 있었다.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독도 역시 일본이 탈취한 섬으로 보고 군령과 구일본영토처리에관한합의서를 통해 독도의 반환을 명한 것이다.

 

이처럼 독도는 국제법상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다. 영국, 미국, 러시아 등이 이권을 챙기기 위해 툭하면 독도의 이름을 자의적으로 개명하고 있지만, 그건 그들의 거지본성 때문이지 독도의 소속이 불명확해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 극우 성향의 일본 네티즌들은 독도도 빼앗기고 메달도 놓쳤다는 막말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역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국의 영토를 허락도 받지 않고 침범했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대놓고 하고 있다.

 

축구 경기에 패한 후 "대한민국이 메달을 빼앗아갔다"는 일본의 반응은 그들의 침략주의적 뇌주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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